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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옛 기억

창경궁


24일. 점심 약속이 끝나고 한가해서 달려간 창경궁. 어릴 적 방학 숙제로 궁 옆 과학관에 갔다 우연히 알게 된
창경궁. 이번이 2차 촬영이다. 이게 몇 년만이람?


자... 이제부터 유식한 척;;;


▣ 창경궁?
 보통 조선의 궁이 남향임을 고려할 때 창경궁은 특이하게도 궁 내 대표적인 건물들이 동향이다. 고려 시대의 동향을 그대로 따랐다.
사실 이 건물은 고려 시대 남경(南京, 현재 서울시의 고려 시대 이름)에 있는 궁을 조선시대에 개량한 궁으로,
고려 시대 임금이 잠시 거처했던 '이궁(離宮)'이었다 조선 성종은 세 대비인 정희왕후(할머니), 안순왕후(숙모-인혜대비),
소혜왕후(어머니-인수대비)를 모시기엔 고려 이궁이 좁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 궁이 개축됨과 동시에 창경궁이 됐다고 한다. [출처 클릭]

 임진왜란 이후 정궁(?)이 불타서 이궁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때 명정전 넓은 마당에 있는
신하 표석(품계석: 직급 별로 배열을 정하는 돌)을 모조리 뽑고 뭔 꽃을 심었다고 하는데... (뭐드라 -.ㅡ;;;)
그 품계석은 광복하고 복원돼서 지금 그 모습을 되찾았다.
 또 일제가 창경궁 내 건물을 헐어 서양식 동·식물원을 짓고, 종묘와 창경궁 사이 도로를 깔아 궁의 맥을 끊어놓기도 했다.
게다가 창경원으로 그 격을 낮추기까지 했다. 이렇게 창경궁은 일제에 여러 번 짓밟혀 아픔이 서린 궁이다.
그저 넓은 못을 갖춘 이궁으로 보기엔 슬프다.

*전체적인 내용은 창경궁에서 제공하는 안내 책자를 이용했다. 여러분도 한 번 가보시길~

 이제부터 본격적인 사진 감상!



▣ 홍화문 (弘化門: 창경궁의 정문)




▲ 흥화문을 들어서면 이렇게 명정문과 그 앞 옥천교가 보인다. 다시 명정문을 들어서면 명정전과 공식 행사를 치렀던 마당이 위치한다.




▣ 옥천교(玉川橋)

▲ 흥화문과 명정문 사이 통로, 그 사이 옥천교









▣ 명정전(明政殿)과 그 마당
 창경궁에서 주된 건물로, 원래 왕과 왕비를 위한 공간이라 경복궁의 근정전에 비해 그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다.
명정전 마당을 둘러싼 통로는 행각이라고 부르는데, 행각에는 왕실 친위부대 주둔지 또는 왕실 초상을 위한 재실로 쓰였다.

▲ 명정전 창의 문양


▲ 명정전

▲ 명정전 마당으로, 즉위식, 과거 시험 등 궁중 공식 행사를 이 곳에서 치렀다.



▲ 이 돌이 바로 품계석





▣ 영춘헌과 집복헌 (迎春軒, 集福軒 - 후궁의 처소로 쓰인 영춘헌, 성종이 독서실로 쓰던 집복헌)






▣ 영춘헌/집복헌과 양화당 사이 돌
 용암이 흘러내러 굳은 거같이 생겼다. -ㅁ-;;





▣ 통명전과 양화당 (通明殿, 養和堂)
 통명전은 왕비가 거처하던 공간으로, 양화당은 내빈을 접대하던 곳으로 쓰였다. 특히 통명전은 장희빈과도 연관이 깊다.
장희빈이 숙종의 왕자 균을 낳고 왕비까지 됐다. 왕자 균이 세자가 됨과 동시에 인현왕후 민씨는 폐위되고,
민씨 추종세력이 다시 장희빈을 왕비에서 끌어내렸다. 이에 열 잔뜩 받은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저주하려고 꼭두각시와 동물 사체를
통명전에 묻었다 적발되고, 그 때문에 사약을 들이키고 말았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 양화당(사진에서 좌), 통명전(우)

▲ 양화당과 그 옆 뭔지 모르겠는 암석;;;

▲ 통명전




▣ 경춘전·환경전 (景春殿·歡慶殿)
 경춘전은 성종이 인수대비를 위해 지은 침전이다. 이곳에서 정조와 헌종이 탄생하기도 했다. 경춘전 옆엔 환경전도 있는데, 왕 또는 세자가 이용했다고 한다.
 

▲ 경춘전

▲ 환경전




▣ 창경궁 내 탑
 이 탑 이름 아시는 분? ㅠㅠ





▣ 함인정과 숭문당 (涵仁亭·崇文堂 - 임금과 신하가 학문과 정사를 논하던 곳)


▲함인정

▲ 숭문당 옆 통로, 통로 끝으로 보이는 건물은 명정전 뒤편




▣ 문정전(文政殿)
 바로 옆 명정전과는 다르게 남향으로 되어 있다. 임금의 집무실로 쓰였다.

▲ 명정전 통로 우측으로 보이는 이 건물은 문정전





▣ 궐내각사(闕內各司) 터
 원래는 왕실의 사무를 관장하던 관청들이 모인 곳이다. 일제가 이 곳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동물을 사육하던 곳으로 썼다.
광복 후 80년대에 와서야 사육 터를 헐고 지금의 모습을 하게 된다.





▣ 내전 터
 옥천교 건너기 전에 오른쪽으로 빠져 춘당지 가는 길에 보이는 넓은 공터.
이 곳도 궐내각사 터와 마찬가지로 일제에 의해 건물이 없어지고 터만 남은 곳이다.
원래는 주로 궁녀들이 머문 곳이다. 지금은 공원과 공터로 남아있다.

▲ 춘당지에서 시작한 물길(이름 모름 -_-;;)













▣ 춘당지 (사진은 대 춘당지)
 내전 터를 지나면 보이는 큰 못.

 사실은 조선시대엔 지금의 소 춘당지가 원래 춘당지였다. 일제가 건물을 헐고 땅을 파 지금 사진으로 보이는 대 춘당지가 조성된 것이다.
그리고 대 춘당지에 있는 섬은 광복 후 1986년에 생겼다.











* 집에 가는 길...

▲ 사실 이 사진은 창경궁 들어가기 전에 찍은 사진이다. 구도 연습차 찍은 사진.

▲ 집에 가려고 버스 기다리던 중에 찍은 사진. 저 버스 번호에 9만 더하면 우리 집 앞까지 데려다 주는 버스인데 ㅠㅠ
진짜 목 빠지게 기다렸다. 전철역(혜화역)까지 가기 귀찮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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